
애플이 중국 최대 메모리 기업 CXMT(창신 메모리)의 D램을 아이폰·아이패드에 적용하기 위한 테스트에 나섰다는 소식이 반도체 업계 전반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단순한 부품 조달 변경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글로벌 메모리 공급망의 판도를 흔들 수 있는 복합적인 계산이 담겨 있습니다.
중국 메모리 기업 CXMT의 부상과 애플의 선택
월스트리트 저널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현재 중국에서 판매되는 아이폰·아이패드·맥북에 탑재될 LPDDR 계열 DRAM을 두고 중국 최대 메모리 기업인 CXMT, 즉 창신 메모리의 칩을 초기 단계에서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인 배경은 명확합니다. 지난해 3분기부터 글로벌 메모리 가격이 수직 상승하면서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대량 생산하는 제조사들의 원가 부담이 한계에 이르렀고, 애플 역시 이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신제품 가격을 부품 원가 상승분만큼 매년 인상할 경우 판매량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원가 부담은 고스란히 이익률을 갉아먹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애플이 왜 하필 CXMT를 선택했을까요. 2025년 1분기 기준 글로벌 D램 점유율은 삼성전자 38%, SK하이닉스 29%, 마이크론 22%로 이 세 기업이 시장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기업이 최근 수년간 인공지능 서버용 HBM(고대역폭 메모리)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에 생산 능력과 연구 인력을 집중하면서, 스마트폰·가전용 범용 DRAM 공급에 빈틈이 생겼습니다. CXMT는 정확히 그 공백을 파고들어 점유율 8%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CXMT가 결코 평범한 민간 기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회사는 2016년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시 정부 자금으로 설립되었으며, 허페이시 정부와 국가 반도체 투자 펀드 등 국유 성격 주주가 지분의 약 36%를 쥐고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가 매년 갱신하는 중국 군사 연루 기업 명단, 즉 국방수권법 1260H 리스트에 2025년 공식 등재된 사실상의 국가 연계 기업입니다. 적자가 나도 버틸 수 있는 재정 구조를 처음부터 갖춘 이 기업이 상하이 증권거래소의 기술주 시장인 과창판 상장 이후 공모가 대비 470% 넘는 주가 급등을 통해 579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11조 원이 넘는 신규 자금을 단번에 확보하며 설비 투자를 가속화한 것입니다. 이것은 시장에서 이익을 쌓아 재투자하며 만들어진 성장이 아니라, 정부 자금과 증시 자금이 동시에 투입되어 만들어진 구조적 성장입니다.
한편 CXMT의 기술 확보 경로에도 심각한 논란이 따라붙습니다. 과거 삼성전자 전직 직원이 18나노 D램 설계도를 빼돌려 넘긴 사건으로 기소된 전례가 있으며, 이는 CXMT가 기술 탈취와 공정 경쟁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유가 됩니다. 애플이 현재 테스트 중인 칩에는 한국 기업의 설계 자산이 유입되었다는 의혹과 군 연계 자금이 동시에 얹혀 있다는 점에서, 이 거래는 단순한 부품 구매를 훨씬 뛰어넘는 의미를 지닙니다.
한국 반도체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받는 실질적 압박
단기적으로는 과도한 공포를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이 학계와 산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세합니다. CXMT의 기술력은 아직 하이엔드 D램이나 HBM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현재 이익을 창출하는 핵심 영역은 인공지능 서버용 고부가가치 메모리이며, CXMT가 채우고 있는 자리는 그보다 아래쪽의 범용 시장입니다. 따라서 두 기업의 수익 구조가 당장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공통된 판단입니다.
그러나 지금 국면에서 한국 기업에 실질적으로 작용하는 변수는 판매량이 아니라 가격 협상 테이블의 분위기입니다. 애플처럼 물량이 큰 고객이 대체 공급처를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다음 계약에서 요구되는 단가의 눈높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론의 산제이 메로트라 최고경영자가 이번 사안에 강하게 반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메모리 가격이 내려가는 다운사이클 시기에 애플이 단가를 지나치게 깎아 마이크론을 위기로 몰았던 기억을 언급하면서, 애플이 중국산 D램을 도입하기 시작하면 미국의 철강과 조선이 걸었던 길을 메모리 산업이 그대로 밟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습니다.
마이크론이 지적한 핵심 논점은 날카롭습니다. 중국 내수용 기기에만 적용하겠다는 애플의 단서는 겉으로 안전장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CXMT의 전체 생산량을 끌어올리고 중국 메모리 산업 전체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한번 규모의 경제를 갖춘 공장은 내수용과 수출용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CXMT의 내년 생산 능력은 12인치 웨이퍼 기준으로 월 35만 장 안팎까지 올라와, 월 38만 장 안팎인 마이크론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힐 것으로 전망됩니다.
사용자 비평의 관점에서도 이 지점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과거 중국의 철강·조선 산업이 그랬듯, CXMT는 기술 격차를 막대한 투자와 생산량으로 상쇄하며 시장을 잠식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아니라 물량으로 시장의 바닥을 먼저 덮는 방식이며, 이는 이미 다른 산업에서 목격한 장면입니다. 한국 메모리 업계가 경계해야 할 지점은 오늘의 점유율 8%가 아니라, 앞으로 이 기업이 얼마나 빠르게 기술과 생산 능력을 끌어올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공급망 다변화 전략과 미국 법적 규제의 충돌
애플의 이번 움직임이 단순한 원가 절감 시도인지, 아니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제스처인지를 두고 업계의 해석이 엇갈립니다. 공급망 다변화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애플이 중국 시장에서만 한정적으로 CXMT 칩을 검토하는 방식은 꽤 정교하게 설계된 접근법입니다. 중국 시장은 애플 전체 매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큰 덩어리이기 때문에, 이 한정된 물량만으로도 원가 절감 효과와 협상용 지렛대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거래를 실제로 가로막고 있는 법적·기술적 장벽이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 국방부의 중국 군사 연루 기업 명단, 즉 국방수권법 1260H 리스트에 CXMT가 공식 등재된 이상, 민간 기업이라도 이 기업과 단순한 완제품 구매를 넘어 기술 사양을 협의하거나 맞춤형 설계를 요구하거나 설계 정보를 주고받기 시작하면 위법 소지가 발생합니다. 메모리는 그냥 사다가 끼우는 범용 부품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이나 두께가 얇은 노트북에는 내부에 냉각 팬이 없기 때문에, 저전력과 저발열을 동시에 만족하는 LPDDR4나 LPDDR5 계열 제품을 기기 구조에 맞춰 패키징까지 설계해야 합니다. 따라서 애플이 현재 칩을 테스트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두 회사 사이에 기술적 조율이 이미 시작되었거나 앞으로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 정치권도 즉각 반응했습니다. 공화당의 짐 뱅크스 상원의원과 민주당 원내대표인 척 슈머 등 여야 주요 의원들이 연명으로 애플에 서한을 보내, 중국산 메모리 도입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는 요구와 함께 공식 답변 기한까지 제시했습니다. 중국 문제에서는 여야가 갈리지 않는다는 미국 의회의 원칙이 이번에도 확인된 것입니다.
주목할 만한 전례도 있습니다. 애플은 4년 전에도 중국 YMTC(양주 메모리)의 낸드 플래시를 도입하려다 미국 의회의 반발에 부딪혀 계획을 철회한 바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도입이 정치적으로 차단될 경우, 애플이 그 사실을 폴더블 아이폰 같은 신규 플래그십 제품의 가격 인상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부품을 싸게 구하려 했으나 정부가 막았다는 서사는 소비자를 설득하기에 효과적인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애플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법적 위험을 감수하고 설계 협력까지 밀고 나가거나, 테스트 단계에서 멈춘 뒤 그 사실 자체를 협상 카드로만 활용하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만 놓고 보면, 애플의 움직임은 아직 후자에 가깝습니다.
이번 사안은 '애플의 중국산 메모리 선택'이라는 단편적 사건이 아니라, 글로벌 메모리 공급망이 재편되는 전환점으로 읽어야 합니다. CXMT의 현재 점유율 8%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한 생산 능력 확대 속도와 기술 추격 경로입니다. 한국 반도체의 진정한 경쟁은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될 수 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부가가치 영역의 우위를 지키면서 동시에 범용 시장의 방어선도 점검해야 할 시점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 애플의 배신, 중국 반도체 CXMT 메모리 쓰려고 하는 이유
출처 링크: https://youtu.be/cTh6K4OGnSM